찾았다 인생멘토

언어로 마음을 잇다 통역사 김혜미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9-02-08 / 조회수 : 102
고운 외모에 시원시원한 말투, 손에 꼽지 못할 만큼 다채로운 경력까지. 화려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 하지만 그녀의 대본은 달랐다. 도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닳다 못해 해진 상태로 형광펜과 볼펜 자국이 가득했다. 가방에선 지식 공부를 위해 읽는다는 영자신문이 종류별로 나왔다. 원활한 통역을 위해 종일 해당 분야를 공부하고, 의뢰인의 대화 취향(?)까지 파악해두는 치밀한 사람. 화려함 뒤 감춰진 수많은 노력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든 거겠지. 진짜 아름답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섭외 도움 : 통역 플랫폼 에퀴코리아(주) korea.eqqui.com]
 

통역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머니께서 번역가로 활동하신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어요. 자연스럽게 영문과에 들어갔고 영어를 잘 하다보니 종종 외빈들의 수행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가 되자 어머니께서 제게 통번역대학원에 가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전 좀 벗어나고 싶었죠. 한창 국제기구에도 관심 있던 터라 연세대 국제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교수님 추천으로 외교통상부 유급 인턴을 하기도 하고, 교통방송 영어채널인 TBS eFM에서 라디오 방송도 했죠. 중앙일보 영자신문사에서 보도기자로도 활동했습니다. 한창 하고 싶은 것을 한 뒤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죠. “해볼 거 다 했으니 이제 통번역대학원을 가는 게 어떠니.”라고요. 결국 돌고 돌아 뒤늦게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유학 준비할 겸 다니자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여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더라고요. 정말 치열하게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그만큼 재밌기도 했어요. 결국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통역사 활동을 하게 됐죠.

통역사님만의 노하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만의 대본을 만드는 거예요. 의뢰인 측에서 한국어로 된 자료를 주면 일일이 영어로 다시 원고를 정리한 뒤, 그걸 기반으로 통역해요. 마치 라디오 방송하듯이 말이죠. 물론 아무리 잘 준비해도 현장에 가면 많이 바뀌어요. 간혹 동시통역 들어갈 때 다른 선생님들이 “야, 뭐 하러 이렇게까지 준비해오냐? 바로 하면 되지.”라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하지만 한국어 자료 보면서 바로 통역하면 아무래도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은 얘기가 나올 때가 있거든요. 통역은 최대한 듣는 사람이 편안하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제 기준이에요. 그래서 대본 만드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아요. 한국어를 영어로 옮길 때 가장 최적의 표현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들었을 때 임팩트가 있을만한 내용은 어떤 부분인가 꼼꼼히 분석하고 찾죠. 단어 하나 하나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전문 분야를 통역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로 인해 어려움이 있진 않으세요? 
지금까지 통역했던 분야를 보면 의학, 패션, 외교안보, 연예계까지 별 분야가 다 있었어요. 통역이란 중간에서 말만 바꿔주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는 거예요. 최소한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제대로 된 통역이 가능하죠. 그래서 그때그때 제게 주어진 의뢰와 관련해 꼼꼼히 정보 수집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 행사라면 누가 참석하는지, 현재 관련 이슈가 무엇인지,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사전 조사합니다. 한 연예인의 통역을 하러 간다면 그 연예인이 어떤 성향인지, 지금까지 어떤 작품에 나왔는지 전방위적으로 다 확인해요. 거의 취재와 같죠. 그러면 어떤 질문이 나와도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대답을 하는지 알고 그에 맞춰 통역할 수 있어요. 전 이 정보 수집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지적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제가 궁금해서 알아보는 것도 많아요.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7년 한국은행에서 주최한 국제회의예요. 당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님이 방한을 하셨는데 MC로 참석했었거든요. 워낙 분위기가 조용하고 심각해서 긴장감을 풀어보고자 “한국은행 총재님, 참 영어도 잘하시고 잘생기셨다~”고 멘트를 했죠. 종종 행사 때마다 뵈었고 정말 멋진 분이라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었는데, 회의장에 있던 분들이 모두 박장대소를 하셨어요. 특히 라가르드 총재님은 웃는 모습이 각 언론사 사진에 찍혀 나가기도 했죠. 그분과 저 외에는 거의 다 남자분들이고 긴장된 분위기에서 ‘잘생긴’이라는 말을 사용한 게 재밌으셨나봐요. 그 뒤로 분위기가 풀렸던 기억이 나요. 반대로 너무 힘든 통역도 있었어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2016년 옥시 본사에서 기자회견했을 때 제가 순차통역을 했었거든요. 당시 피해자분들이 회견장 무대 위로 올라오셔서 항의하고 분위기도 심각했어요. 통역사들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심한 편인데 아이를 잃은 부모의 처절한 마음을 통역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날 일 마치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후 한 달은 당시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 우울감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통역사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점점 요구되는 능력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영어는 다들 꽤 잘해서, 지금 어디 나가서 영어통역사라고 말하려면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잘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저건 나도 하겠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대부분 영어로 말은 못해도 이해는 하니까 아주 작은 실수도 다 잡아내요. 또 어떤 회사든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자리가 아니면 통역사를 부르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역사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저희가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민감한 사안을 논의할 때 바로 말하면 싸움이 될 수 있지만, 통역사를 통해 한 번 걸러서 이야기하면 좀 더 부드러워지거든요. 그래서 통역을 넘어 대변인 역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이 더 요구돼요. 시장이 어려워진 거죠. 더 잘해야 되고, 실수는 더욱 용납이 안 되는 상황.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봐요.

최근 통역 어플이나 인공지능 통역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요. 통역사님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날씨가 어때?’와 같이 간단한 말은 기계로 충분히 가능하죠. 하지만 저희가 하는 통역은 그런 실생활 대화가 아니라, 전문적이고 지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기계가 하기 어려워요. 현재 통역사들의 통역 프로세스 자체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된대요. 사람이 들을 땐 듣고 말할 땐 말을 해야 하는데, 들으면서 바로 말을 하는 게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현상이거든요. 과학적으로 설명돼야 그걸 응용해서 기계를 만들 텐데, 머릿속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서 동시통역이 되는지 모른다는 거죠. 사실 통역하는 저희들도 몰라요. 재채기 하듯 본능적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우스갯소리로 그 분이 오셔야 잘된다고 표현하기도 해요.(웃음) 그런 걸 생각했을 때 통역은 기계로 대체되기 힘들 것 같아요. 또 통역은 돌발 상황이 늘 있어요. 과연 로봇이 대본 순서 변경된 걸 바로 체크하고 반영할 수 있을까요?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죠. 제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20대 대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어 공부 방법이 있다면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고 봐요. 요즘 보면 ‘무조건 외워라! 며칠 만에 영어공부 끝!’ 이런 류의 주장이 있던데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토익 점수라면 몰라도 일상영어를 구사하고 싶은 거라면 어린 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해야 돼요. 아이가 처음 말 배울 때 엄마 말, 아빠 말을 계속 듣고 따라 하잖아요. 처음부터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없죠. 그것처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듣고 꾸준히 소리 내어 말해보세요. 가장 좋은 건 뉴스를 보는 겁니다. 저도 늘 ‘이코노미스트’, ‘타임’, ‘블룸버그’ 등을 보는데 읽을 때 소리 내서 읽어요. 뉴스 영상을 보면서 10초 간격으로 따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신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의식적으로 보고 듣고 따라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언젠가 사진 찍히듯 머리에 딱 남을 거예요. 언어를 조립하려고 하지 마세요. 언어는 언어입니다. 계속 연습하세요. 자연스럽게 영어가 흘러나올 거예요. 한국어 문법 몰라도 우리 그냥 말하는 것처럼요.


연혁
2007 외교통상부 정책기획실 유급인턴
2008-2010, 2013-2014 TBS eFM 교통방송 영어라디오, 영어뉴스 보도기자
2010 중앙일보 영어신문, 영어뉴스 보도기자 
~ 현재 영어 및 한글 MC, 국제회의 동시통역 및 순차통역사

통역 및 MC 활동
2002 외교부 주최 한일월드컵 기념행사
2014 Mnet <댄싱9> 자말심스 출연 시 통역 
2015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제5차 국제관광 협력 포럼
2016 옥시 기자회견 순차통역
2016 교통안전공단 및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 주최 제3차 교통안전 그랜드 컨퍼런스
2017 현대카드슈퍼콘서트 콜드 플레이 내한 공연 시 통역
2017 예술의 전당 주최 알폰스 무하 전시회 기념 존무하 이사장 특별강연
2017 보건복지부 및 세계보건기구 공동 주최 WHO 고위급 회의 및 국제보건안보구상 회의 
2017 산업통상자원부 및 한국에너지공단 공동 주최 2017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
2017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국제통화기금, 피터슨연구소 공동주최 국제회의 
2018 강원도 주최 세계청소년 문화캠프,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기념 페스티벌
2018 대한민국 해군 주최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 워크숍 
외 다수

방송
tvN 예능 <선다방>
취재_임수연 기자 사진_안용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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